요즘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들 사이에서 신조어가 하나 떠오르고 있습니다. 바로 “엑셀부부”.
생활비, 데이트 비용, 육아 시간, 가사노동까지 모두 엑셀 시트에 기록해서 관리하는 부부들을 말하죠. 처음 들으면 “와, 진짜 철저하다!” 싶은데… 문제는 이게 가끔 사랑이 아니라 셀(cell) 안에 서로를 가둬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상담실에 나타난 한 쌍
며칠 전 변호사 사무실에 부부 한 쌍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두툼한 파일을 꺼내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님, 여기에 지난 3년치 모든 기록이 있습니다. 제가 얼마 냈고, 아내가 얼마 냈는지, 아이 돌봄 시간까지 분 단위로 기록해 놨습니다.”
아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그 엑셀이 문제예요. 저는 아이랑 밤새 뒤척이다가도 아침에 출근하잖아요. 제 피곤함은 칸에 안 들어가잖아요. 근데 남편은 늘 ‘엑셀로 확인하자’만 하니까 저는 그냥 데이터 취급받는 기분이에요.”
남편과 아내, 각자의 입장
아내:
“저는 매달 생활비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어요. 제가 식비를 더 많이 부담한 달도 있고, 아이 돌보는 시간도 적어도 하루 5시간 이상은 되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이걸 다 '엑셀에서 보자’고만 하는데 제피곤함은 숫자로 설명이 안되요."
남편: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버는 수입은 아내보다 많고, 고정 지출 대부분을 제가 맡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공평하게 하자는 취지로 만든 게 엑셀인데, 왜 제가 손해 보는 것처럼 말하는지 이해가 안되요."
아내:
“남편은 문제는 공평을 엑셀에만 의존하고 있어요. 제가 아픈 날이나 감정적으로 힘든 날 같은 건 셀에 기록이 안 되는데 말이죠."
남편:
“저는 그냥 공정하게 나누고 싶었던 거예요. 객관적으로 보면 다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죠.”
아내:
“공정은 좋은데요, 제 기분은 함수로 계산이 안 되잖아요. 결국 저는 사람이 아니라 ‘셀 안의 숫자’가 된 거예요.”
변호사의 조언
"엑셀은 그냥 도구일 뿐입니다.
가계부로 쓰면 좋고, 참고용으로 쓰면 더 좋죠. 그런데 그걸 '최종 판결문'처럼 들이대면, 감정은 금세 얼어붙습니다. 부부 관계는 50:50의 수학이 아니라, 60:40도 되고 30:70도 되면서 계속 맞춰가는 과정이거든요."
이혼 상담하다 보면, 정말 이런 엑셀 파일을 증거라며 가져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사실 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인의 파탄 책임은 돈의 비율보다는 서로의 태도, 부양 의무 위반 여부, 정신적 갈등에 더 무게가 실리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부부들에게 해주는 말은 단순합니다.
- “엑셀은 기록, 대화는 감정.”
- “표는 참고, 마음은 직접 확인.”
한마디로, 엑셀은 ‘서브 도구’로 쓰세요. 메인 메뉴는 '대화'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