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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구두, 화려했던 시절과 잊혀진 이야기

by raonlog 2025.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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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에서 한때 구두 업계의 금강제화와 양대 산맥으로 불리던 ‘에스콰이어(Esquire)’ 구두 브랜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이 브랜드는 단순한 구두 브랜드를 넘어, 패션과 연예계 소문까지 얽힌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1. 에스콰이어 구두의 탄생과 전성기

에스콰이어 구두는 1961년 서울 명동의 작은 구둣방에서 시작했습니다.
창업자 고 이인표 회장은 에스콰이어를 국내 고급 제화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켰고, 금강제화와 함께 한국 구두 업계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1980~1990년대, 에스콰이어는 정장 구두와 캐주얼 슈즈 모두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며 ‘국민 신사 구두’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게다가 당시 여중, 여고생들은 학생화 운동화와 정해진 디자인 구두만을 신게 했었는데 그때는 흰색 운동화, 남색운동화, 여학생구두 이렇게 3가지만 신고 다녀야했다네요

출처:조선일보

2. 위기와 몰락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에스콰이어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됩니다.

  • 재무 악화: 부채가 약 1,000억 원에 달하며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가능성이 거론됨.
  • 브랜드 경쟁력 약화: 디자인 변화가 늦고 젊은 층 이탈 → 매출 정체.
  • 유통 전략 실패: 신유통 채널 대응 부족, 운영 리스크 증가.
  • 시장 환경 변화: 수입 제품과 SPA 브랜드, 스니커즈 공세 → 내수 침체.

결국 2014년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 2015년 "형지그룹(형지엘리트)"이 인수하며 브랜드는 ‘형지에스콰이아’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3. 금강제화와 비교

같은 시기, 에스콰이어의 경쟁사 금강제화브랜드 리뉴얼과 유통 채널 다각화로 반등에 성공합니다.

  • ‘브루노말리다’와 같은 이탈리아 라이선스 브랜드를 확보
  • 멀티슈즈숍 ‘레스모아’를 통한 유통망 확대
  • 2013년 전체 매출 1,133억 원 달성, 연평균 20% 성장

금강제화는 전략적 투자와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에스콰이어와 엇갈린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4. 황신혜와의 인연

에스콰이어 구두 브랜드의 전성기에는 연예계 소문도 함께 떠돌았는데요.
배우 황신혜는 과거 1988년 에스콰이어 그룹 2세와 결혼한 적이 있습니다.

  • 배우 황신혜1988년 에스콰이어 사장 아들 이정 씨와 결혼했지만, 9개월 만에 이혼했습니다.
  • 이후 1998년 8월 1일, 황신혜는 금융컨설팅 회사 운영자 박민서 씨와 재혼했습니다

이 소문 덕분에, 에스콰이어는 단순 구두 브랜드가 아니라 연예계와 연결된 화제성 있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지인배우가 광고하는 에스콰이아 구두

5. 마무리: 에스콰이어의 역사적 의미

오늘날 에스콰이어 브랜드는 형지그룹이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처럼 구두 업계의 왕좌를 차지하진 못합니다.
그럼에도 에스콰이어 구두는 한국 패션사에서 한 시대를 대표한 남성 구두 브랜드였고, 연예계 소문까지 얽히며 독특한 역사적 흔적을 남겼습니다.

에스콰이어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시대적 트렌드와 문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한국 남성 신사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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